브란돌리니의 법칙 Brandolini's Law
헛소리를 반박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 양은 그런 헛소리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보다 몇십 배나 더 든다.
이 말은 브란돌리니의 법칙 또는 헛소리 비대칭 원리(BS Asymmetry Principle)라고 불린다.
*BS는 Bullshit을 줄인말임. -미국 등에서는 이 표현을 불쾌하게 여겨 BS라고만 표기하는 경향이 있다고 함.
이는 이탈리아의 프로그래머 알베르토 브란돌리니Alberto Brandolini가 2013년, 다니엘 카너먼의 저서 《생각에 관한 생각》을 읽고 이탈리아 정치 토크쇼를 보다가 영감을 얻어 트위터에 올린 것이라고 한다.
브란돌리니의 법칙은, 헛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만, 그 헛소리를 반박하거나 바로잡는 데는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는 말이다.
이 법칙은 왜 가짜 뉴스, 잘못된 정보, 혹은 근거 없는 주장이 인터넷이나 사회 전반에 빠르게 퍼져나가고, 그것을 바로잡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운지를 잘 설명해 준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를 몇 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COVID-19와 백신 관련 허위정보
2020년 팬데믹 동안 "백신에 마이크로칩이 들어 있다"는 주장이 SNS를 통해 퍼졌다. 이 주장은 근거도 없이 짧은 문장이나 이미지로 확산됐다. 지금도 이와 같은 기사를 포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 밖에도 백신에 유전자 변형 DNA, 신경독소 발암물질이 있다 등이 있다.
이 소문을 반박하기 위해 과학자와 의사들이 나서 백신의 개발 과정, 성분, 작동 원리를 설명해야 했고, 수많은 기사,논문, 정부 발표까지 동원되었다.
그럼에도 이와 같은 소문은 계속해서 간단하고 자극적인 방식으로 더 빠르게 확산됐다.
2. 지구 평면설
지구가 둥글다는 이론은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일부 집단에서는 지구 평면설을 주장하고 있다. 다소 엉뚱하고 이해할 수 없지만, 유튜브나 포럼에서 자극적인 콘텐츠로 퍼지곤 한다.
이를 반박하려면 중력, 위성 사진, 항공 항로, 물리학의 원리 등 여러 과학적 지식을 동원해야 한다.
3. "달 착륙은 조작이다" 라는 음모론.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이 스튜디오에서 찍은 연출이라는 주장은 수십 년째 회자되고 있다.
당시 미국은 기술적으로 달에 갈 능력이 없었지만, 소련과의 우주 경쟁에서 승리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달착륙을 조작했다는 설과 NASA는 할리우드 감독(스텐리 큐브릭)을 고용해 영상을 찍었으며, 사진 속 그림자, 성조기 흔들림, 별이 보이지 않는 점 등을 증거로 들어 조작설을 주장했다. 이는 간단한 이미지 몇 장과 '그림자가 이상하다' 같은 주장으로 확산되었다.
NASA와 과학자들은 이에 대해 물리적 증거, 통신 기록, 달에서 가져온 암석, 국제적 관측 데이터를 통해 반박해야 했다.
미국뿐 아니라 소련, 유럽, 일본 등의 전파망과 망원경으로도 아폴로 우주선의 궤도와 착륙이 관측되었고,
달에 남겨진 반사경은 지금도 지구에서 레이저로 반사 확인이 가능하며, 성조기의 움직임은 진공 상태에서 펼쳐진 천이 관성에 의해 움직이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달 표면에는 대기층이 없어서 별빛이 카메라에 노출되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설명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복잡해서 많은 사람들이 끝까지 보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은 과학과 지식에 대한 불신을 확산시키고, 과학적 합의조차도 개인의 '믿음' 수준으로 격하시킨다.
기후변화, 백신, 질병, 식품 안전 등에 대한 공공 정책이 흔들리며 나는 '믿지 않아'라는 태도로 과학적 증거 자체가 무시된다.
팬데믹 당시 백신 거부 운동, 마스크 반대 운동 등이 그 예다.
또한 이는 비판적 사고 능력을 약화시킨다.
음모론은 간단하고 감정적인 서사로 설명되며,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시킨다.
이를 믿는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진실을 아는 소수'라고 생각하며, 다른 의견을 배척한다.
이로 인해 정보를 비교하고 분석하기 보다 자극적 이야기만 반복 양산되고 소비된다.
민주주의 기반이 흔들린다.
사회는 사실에 근거한 공론장과 합리적 논쟁을 통해 운영된다. 그러나 음모론은 공론장을 거짓 정보로 오염시키고 합의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선거조작 음모론은 정치 불신을 극단화하고 폭력 사태를 초래하기도 한다.
사회적 분열을 심화시킨다.
음모론은 종종 우리 : 그들의 프레임으로 작동한다. 우리나라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양극화, 종교적, 인종적 혐오, 세대 갈등이 극단적이 된다.
경제적 피해와 사기가 난무한다.
아래 글은, 1710년 경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가 쓴 《The examiner》라는 정치 논평 글 중 하나다.
“Besides, as the vilest Writer has his Readers, so the greatest Liar has his Believers; and it often happens, that if a Lie be believ’d only for an Hour, it has done its Work, and there is no further occasion for it. Falsehood flies, and the Truth comes limping after it; so that when Men come to be undeceived, it is too late; the Jest is over, and the Tale has had its Effect.”
게다가, 가장 천박한 작가에게도 독자가 있듯이, 가장 뻔뻔한 거짓말쟁이에게도 믿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종종, 거짓말이 단 한 시간만이라도 믿어진다면, 그것으로 제 역할은 다 한 셈이 된다. 더 이상 거짓에 휩쓸 필요조차 없다.
거짓은 날아서 가고, 진실은 절뚝이며 그 뒤를 따라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속임수에서 깨어날 즈음엔 이미 늦었고, 농담은 끝났으며 이야기는 이미 효과를 다 발휘한 뒤다.
이는 거짓은 빠르게 퍼지고 진실은 뒤늦게 따라와도 그때는 이미 사람들이 영향을 받았고, 효과는 끝나버렸다는 뜻이다.
이 헛소리 비대칭 성은 이미 스위프트의 글을 통해서 보았지만 오래전부터 인지되고 있었던 일이다. 게다가 지금과 같이 인터넷이나 소셜미디어가 활발한 시대에는 헛소리를 생산하고 확산하는 속도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이것이 우리가 정보를 함부로 퍼드려서도 안되지만, 비판적인 시각도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