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팍 아마루 Tupac Amaru
'투팍 아마루'라는 이름은 크게 두 명의 중요한 역사적 인물을 가리킨다.
두 인물은 모두 페루와 잉카 문명, 그리고 스페인 식민 지배에 대한 저항과 관련이 깊다.
그 중 한 명은 투팍 아마루 1세 (Tupac Amaru Ⅰ,1545~1572)이다.
그는 스페인의 잉카 제국 침략 이후, 잉카 제국의 잔존 세력이 빌카밤바Vilcabamba지역에 세운 신 잉카제국의 마지막 사파잉카 (황제)였다. 16세기에 스페인에 맞서 항전을 벌였으나, 결국 스페인에 체포되어 1572년에 처형당했다. 그는 스페인의 식민 통치에 저항한 상징적인 인물로 남았다.
‘투팍(Thupaq)’은 케추아어로 ‘왕’, ‘고귀한 자’ 혹은 ‘빛나는 자’를 뜻하며, ‘아마루(Amaru)’는 뱀을 의미하거나 안데스 신화에 나오는 신성한 존재인 ‘날개 달린 뱀’을 가리킨다. 따라서 ‘투팍 아마루’는 ‘신성한 뱀의 왕’ 혹은 ‘고귀한 뱀’으로 해석될 수 있다. - 위키피디아 참조(사진 포함)
또 다른 한 명은 투팍 아마루 2세(Tupac AmaruⅡ)다.
본명은 호세 가브리엘 콘도르칸키 노구에라(José Gabriel Condorcanqui Noguera)이다.
- 콘도르칸키는 부계, 노구에라는 모계의 성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에서는 전통적으로 개인의 이름 뒤에 아버지의 첫 번째 성과 어머니의 첫 번째 성을 순서대로 붙이는 것이 관례였다.
그는 18세기에 활동한 페루의 원주민 지도자이자 독립운동가였다. 그는 자신이 잉카 제국의 마지막 황제 투팍 아마루1세의 후손이라 주장하며 그의 이름을 계승하여 '투팍 아마루2세'라고 자칭했다. 이는 잉카 정신과 저항의 유산을 잇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1780년에 스페인 식민정부의 과도한 세금과 억압, 특히 미타제도(강제노역)에 맞서 대규모 봉기를 일으켰다. 그는 원주민, 메스티소, 흑인 차별 철폐와 잉카 제국의 부흥을 선언했다.
여기서 메스티소(Mestizo)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 사용된 용어로, 유럽인 또는 스페인 사람과 아메리카 원주민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을 말한다. 스페인 식민지 사회는 엄격한 신분 및 인종 계층 제도(카스타Casta 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카스타 제도는 혈통에 따라 사람을 분류하는 신분체계로, 사회적. 법적 권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제도 안에서 메스티소는 유럽 본토 출신 스페인 사람(페닌슐라레스)이나 식민지에서 태어난 유럽계(크리오요)보다는 아래 계층이었지만, 순수 원주민이나 아프리카계 사람들보다는 대체로 높은 위치에 놓였다고 볼 수 있다.
투팍 아마루 2세 자신도 원주민 계통이면서도, 스페인식 교육을 받고, 스페인 문화에 익숙한 면모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사회에서 그의 위치는 완전한 원주민 지도자라기 보다는 스페인 식민 사회와 원주민 사회 사이의 경계에 있는 인물로 볼 수 있다.
또한 18세기 식민지 페루에는 상당수의 아프리카계 사람들도 살고 있어, 투팍 아마루2세는 당시 스페인 통치 하에 차별받고 고통받는 모든 이들에게 연대를 호소하고 인종에 상관없이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그의 봉기는 초기에 성공을 거두기도 했으나, 결국 스페인 군대에 진압되었고, 그는 가족들과 함께 잔인하게 처형되었다. 그는 아내 미카엘라 바스티다스와 아들, 그리고 측근들이 잔혹하게 처형당하는 것을 강제로 지켜보아야 했다. 투팍 아마루 2세도 처형 직전에 혀가 잘렸으며, 거열 방식으로 처형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그의 신체가 쉽게 찢어지지 않아, 쿠스코 중앙 광장에서 군중이 보는 앞에서 참수되었고, 그후 그의 시신은 조각내어져 페루 각지로 보내졌으며, 머리는 효수되었다고 한다.
《 엘 콘도르 파사 》는 1913년 로블레스가 작곡한 사르수엘라로, 안데스 전통 음악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곡은 직접적으로 투팍 아마루 2세를 위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저항 정신과 안데스 원주민의 자유에 대한 염원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해석된다.
투팍 아마루 2세의 봉기는 비록 실패했지만, 이후 라틴 아메리카 독립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는 페루에서는 독립의 선구자이자 민족 영웅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