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산의 능선이 보이고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다보면 마치 그곳에 다다를 것이라 걷지만, 결국에는 그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발을 멈추게 된다. 여전히 산 능선은 멀리 있고, 내 발은 어느 산 중턱에 머물러 있다.
계속가야 할까? 저기 산이 있기에 올라가는 것이라 하지만 나는 등반가가 아니다. 산을 정복하기 위해 가는 것도 아니고 산 정상이 목적이기 때문에 가는 것도 아니다. 산의 어딘가는 그저 내가 가는 길의 방향일 뿐이다. 산의 어디 쯤 그저 길을 따라 걷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니 꼭 그것이 산 정상의 능선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음식의 맛이 다르듯 산의 어느 곳을 걸어도 다 맛은 있다. 산꼭대기에 오르지 못한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패배주의자의 입에서 나올 법한 소리라고 해도 상관없다. 기를 쓰고 숨 가쁘게 산 정상에 올라가보아야 언제나 보던 풍경이 내려다 보이겠지. 그 넓고 탁 트인 전망 때문에 정상에 오르는 것이라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스카이라운지에서 도심을 내려다보는 것만큼 간단한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신선한 공기가 없다. 산에서 주는 그런 공기 말이다.
그런데 가끔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보면 왜 그리 부리나케 걸어 올라가는 걸까 생각해 보게 된다. 등산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운동을 하는 것이겠지만, 단풍놀이나 꽃놀이 때문에 산을 오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달려들 듯이 산에 오를까.
나는 걸음이 빠른 편이라 다른 사람들 눈에도 내가 그렇게 보일지 모르겠다. 아마도 더 달려드는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근력이 부족해서 항상 산 중간쯤에서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멈춘다. 산에서는 한 번 쉬고 나면 재충전이 되어 오르기 쉬워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쉬기보다 그대로 죽 올라가는 모양이다. 지쳐서 주저앉고 싶어지면 굳이 더 올라가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올라가 봐야 그게 그건데. 굳이 힘 빼고 올라가나 여기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나 뭐가 달라. 가끔은 그게 더 합리적인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힘들고 지친데 뭐 굳이 그렇게 뭘 보겠다고 산꼭대기까지 기어 올라가. 여기서 난 기다리고, 다녀오고 싶은 사람이나 갔다 오면 되지.
그런데 그게 참, 산에 한 번 오르면 끝까지 갈 수 밖에 없는 모양이다. 사람들이 모두 올라가니 중간에 멈추고 되돌아가는 것은 긴급 상황이 발생하지 않고서야 돌아가기가 멋쩍다는 것이다. 사실 남 눈치보고 사는 세상도 아니고 되돌아간다 해도 상관없는 일이지만 그런데도 일행이 있을 때는 그렇지가 않으니 말이다.
세상일도 그런 것 같다. 굳이 되지도 않는 일 뭣하러 붙잡고 있을까 싶으면서도 함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뭐든 해볼 때까지는 해보게 된다는 것이다. 정말로 내가 하는 일이 좋아서 미치도록 좋아서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동료나 동반자가 있으면 도움이 된다. 혼자서 하는 일 보다 내게 작은 말 한마디라도 보태주는 사람이 있다면 좀 힘들다고 중간에 멈추지 않을지 모른다. 올라가보면 올라가본 사람만이 아는 기분이 있다. 그래 산꼭대기에 마저 올라가 신선한 공기를 듬뿍 마시고 산 아래를 내려다보지. 정말 끝내줄 것이다. 힘들어도 견디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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