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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노트

롱 서펀트와 올라프 트뤼그바손 2

by 동틀 녘 2025. 3. 31.

올라프 트뤼그바손은 노르웨이 왕으로 (재위 약 995~1000) 노르웨이의 기독교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1. 생애

노르드 사가(Norse Sagas), 특히 스노리 스툴루손의 '헤임스크링글라(Heimskringla)'에 따르면 그의 삶은 매우 극적이었다.

아버지 트뤼그비 올라프손(Tryggvi Olafsson)이 살해당한 후 유복자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적들을 피해 끊임없이 도망 다녔다고 한다. 노예로 팔려가거나, 에스토니아, 키예프 루스(현재의 우크라이나/러시아 지역) 등지를 떠돌며 자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사가의 내용은 역사적 사실과 전설이 혼합되어 있을 수 있다.)

성장해서는 뛰어난 전사로서 바이킹 활동에 참여하며 명성을 쌓았고, 잉글랜드 등지를 약탈하거나 용병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2.기독교 개종 및 왕위 등극

잉글랜드에 머무는 동안(혹은 그 이전으로 보기도 함) 기독교로 개종한 것으로 보인다. 994년경 잉글랜드 앤도버에서 세례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올라프는 자신의 정통성(하랄 1세의 후손)과 기독교를 내세우며 노르웨이로 돌아왔다. 때마침 당시 노르웨이는 호콘 야를의 통치에 대한 불만이 높았기 때문에, 올라프는 빠르게 지지를 얻어 호콘 야를을 몰아내고 995년경 노르웨이 왕으로 추대되었다.

 

3.강압적인 기독교화 정책

왕위에 오른 올라프는 노르웨이 전역에 기독교를 강제로 전파하는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그는 이교 신전과 우상들을 파괴하고, 개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고문, 추방, 심지어 처형까지 불사하며 매우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이러한 방식은 많은 반발을 샀지만, 노르웨이의 공식적인 기독교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노르웨이 최초의 주교구를 설립하고 교회를 세우는 데 힘썼다. 니다로스(Nidaros), 현재의 트론헤임(Trondheim)에 교회를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4.롱 서펀트와 스볼데르 해전

그는 자신의 권력과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 당시 최대 규모의 전함인 롱 서펀트(Ormrinn Langi)를 건조했다.

그러나 그의 강압적인 통치와 세력 확장은 주변국(덴마크, 스웨덴) 및 노르웨이 내부의 경쟁자(특히 호콘 야를의 아들들)들의 반감을 샀다.

서기 1000년경, 발트해의 스볼데르(Svolder, 정확한 위치는 명확하지 않음)에서 덴마크, 스웨덴, 그리고 노르웨이 반대파 연합 함대의 기습 공격을 받았다. 이것이 바로 스볼데르 해전(Battle of Svolder)이다.

사가에 따르면, 패배가 확실해지자 올라프는 갑옷을 입은 채 바다로 뛰어들어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