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회(slaked lime)은 우리가 알고 있는 회반죽에 사용되는 석회가 아니다.
여기서 lime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데, 라임은 두 가지의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 하나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초록색 시트러스 계열의 과일인 라임이다.
- 다른 하나는 칼슘을 포함한 무기물로, 생석회, 소석회(slaked lime), 석회석 등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slaked lime에서 라임이라는 말이 들어갔다고 해서 과일인 라임이라고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slaked lime는 보통 소석회라고 하는데, 화학식Ca(OH)₂)로 표기되는 수산화칼슘을 일컫는 말이다.
판(paan)에 석회를 넣어 먹는다고 하는데, 이때의 석회는 식용 석회를 말한다.
식용 석회는 아주 소량을 입에 넣어 씹으면, 아레카넛(areca nut)과 반응해서 붉은색으로 변한다.
식용 석회라고 해도 다량 섭취하거나 자주 사용하면 점막에 자극을 주고, 구강암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인도에서 판(paan)을 씹는 문화가 있지만, 건강상 이유로 권장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생각하는 공업용 석회와 '판'에 들어가는 석회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핵심은 (1) 등급(Grade)과 처리 과정, (2) 사용량(Dosage)에 있다.
(1) 식용 등급 vs. 공업 등급
'소석회(Slaked Lime, 화학명: 수산화칼슘, Ca(OH)₂)'는 공업용과 식용 등급으로 나뉜다.
- 공업용/건축용 소석회:
건축 자재(모르타르, 회반죽), 토양 중화, 산업 공정용으로 순도가 중요하지 않다. 제조 과정에서 중금속(납, 비소, 카드뮴 등)이나 다른 불순물이 다량 함유될 수 있다. 이것을 먹으면 당연히 매우 위험하다. 우리가 '석회'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바로 이것이다.
- 식용 등급(Food-Grade) 소석회:
식품 첨가물로 인간이 섭취할 수 있도록 매우 엄격하게 정제되고, 불순물과 독성 물질이 제거된 순도 높은 제품이다. 각국의 식품의약품안전처 같은 기관에서 안전성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인도나 동남아시아에서 '판'을 위해 파는 소석회(현지에서는 '추나/Chuna'라고 부름)는 바로 이 식용 등급이다.
(2) 어떻게 먹는가? : 극소량의 촉매 역할
아주 적은 양만 사용한다. '판'을 만들 때 소석회는 잎사귀에 손톱만큼의 양, 즉 아주 얇게 펴 바르는 수준으로 극소량만 사용한다.
'맛'이 아닌 '화학 반응'을 위한 것이다. 이것은 화학적 촉매제(catalyst) 역할을 한다.
소석회는 강한 알칼리성(염기성) 물질이다.
이것이 함께 씹는 빈랑자(Areca nut)의 성분과 만나면 화학 반응을 일으킨다. 이 반응을 통해 빈랑자에 포함된 각성 성분(알칼로이드, 주로 아레 콜라인)이 활성화되어 흡수가 잘 되게 된다. 즉, '판'이 주는 특유의 효과(약간의 취기, 각성)를 이끌어낸다.
(3) 다른 문화권의 비슷한 사례: "위험한 화학물질"을 음식에?
이러한 방식이 유독 인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문화권에서도 비슷한 원리를 사용한다.
* 닉스타말화(Nixtamalization)
멕시코에서 토르티야를 만드는 옥수수(마사 masa)를 가공할 때, 잿물(alkaline solution)이나 석회수(소석회 녹인 물-limewater)에 옥수수를 담가 끓이는 전통적인 처리법이다. 이 과정을 통해 옥수수의 영양소(특히 비타민 B3 -니아신) 흡수율이 높아지고, 독소를 제거하며, 반죽도 더 잘 된다.
옥수수에 풍부한 니아신(비타민 B3)
니아신은 우리 몸에서 에너지 대사에 필수적이다. 니아신이 부족하면 펠라그라라는 질병이 생기는데, 대표적 증상이 3D이다.
- Dermatitis (피부염)
- Diarrhea (설사)
- Dementia (치매 증상)
역사적으로 옥수수를 주식으로 하던 지역에서는, 닉스타말화 처리 없이 옥수수만 먹으면 펠라그라가 많이 발생했다.
닉스타말화(석회수 처리)를 하면 옥수수에 있는 결합형 니아신이 유리형 니아신으로 변해 체내 흡수가 가능해진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멕시코, 과테말라 등에서는 펠라그라가 거의 발생하지 않은 반면 유럽에 옥수수가 전해졌지만, 닉스타말화를 몰라 펠라그라가 유행했었다고 한다.
닉스타말화 처리를 하면, 곰팡이 독소나 일부 해로운 화합물이 중화되거나 줄어들고,
옥수수의 껍질이 쉽게 벗겨져 반죽하기 좋고(이렇게 만든 반죽을 니스타말(masa)이라고 함), 반죽의 점성이 생겨 토르티야, 타말레 등을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닉스타말화 처리를 위해 옥수수를 석회수에 삶거나 끓이는데 안전할까?
옥수수 알갱이의 주성분은 전분과 섬유질 껍질이다. 석회수는 표면의 껍질과 결합 조직을 느슨하게 만들고, 일부 화학 반응을 일으키지만, 전분 알갱이 내부까지 깊이 스며들지 못한다
그래서 껍질 제거가 쉬워지고 니아신이 유리형으로 변하지만, 전체 알갱이가 석회로 채워지지 않는다.
보통 끓이거나 불림 시간이 몇 시간 정도이고 농도는 매우 희석되어 있다. 이 시간 동안 겉면과 껍질 위주로 화학 반응이 일어나며, 내부까지 확산하는 양은 적다.
이 과정에서는 헹굼이 정말 중요하다. 삶은 뒤 여러 번 물에 헹구면 표면과 틈에 남은 석회 성분이 대부분 씻겨 나간다. 이렇게 세척 후에야 '니스타말' 반죽을 만든다.
즉 석회수는 옥수수의 펙틴, 헤미셀룰로오스 등을 분해해 껍질을 부드럽게 하고 니아신 결합 상태를 바꾼다.
*프레첼(Pretzel)과 베이글
독일의 프레첼이나 일부 베이글의 독특한 갈색 껍질과 풍미는 반죽을 굽기 전에 잿물(Lye, 수산화나트륨/수산화칼륨) 용액에 담갔다 빼기 때문에 생긴다. 잿물은 소석회보다 훨씬 강한 염기성 물질이지만, 정확한 농도와 시간을 지켜 사용하면 안전한 음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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