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수화서(肉穗花序)는 영어 Spadix를 번역한 말로, "굵고 살이 많은 꽃대에 이삭처럼 작은 꽃들이 빽빽하게 붙어 있는 꽃의 배열 방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육수화서는 일상적으로 쓰는 말은 아니지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의 꽃 또는 열매이다. 대표적인 예가 옥수수다.
사실 육수화서는 식물학 전문용어다. 의학용어나 법률용어만큼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말이지만, 더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일본식 한자어이기 때문이다. 어법이나 어감이 우리말과 다소 어울리지 않아 어색할 수밖에 없다.
19세기 후반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서양의 학문, 기술을 대대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수많은 학술 용어를 번역했다. 일본 학자들은 기존에 있던 한자를 조합하여 새로운 개념을 나타내는 단어를 만들었는데, 육수화서도 그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spadix'의 사전적 의미인 '살집이 두툼한(fleshy) 점과 이삭(spike)에서 착안해, 한자 肉(살 육), 穗(이삭 수), 花序(꽃의 차례, 화서)를 조합해 육수화서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일본어로는 '니쿠스이카죠 (にくすいかじょ)'라고 읽는데, 현재 일본에서도 식물학 전문용어로 쓰이면서도 spadix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병기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한국의 지식인들이 근대 학문을 일본 서적이나 일본 유학을 통해 접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거의 모든 분야의 학술용어들이 일본에서 만든 용어를 차용하게 되었다. 과학(科學), 철학(哲學), 사회(社會), 전화(電話), 광합성(光合成), 세포(細胞) 등도 그 대표적 사례다.
이렇게 이미 자리매김한 말들은 이제 우리 식으로 고치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와 학계의 노력이 필요한데다, 아직 대체할 만한 우리말 표현을 정착시키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재미있는 점은, 불염포나 육수화서와 같은 식물학 용어들이 한자어이기는 하지만 중국에서도 역수입한 말이라는 것이다.
근대화가 상대적으로 늦은 중국의 경우, 청나라 말기 서양 학문을 배우기 위해 중국 지식인들과 학생들은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 과정에서 이미 번역된 용어들을 굳이 새로 만들어 쓰기 보다 일본식 번역어를 그대로 쓰는 것이 훨씬 효율적으로 여기고 중국으로 역수입된 것이다. 과학, 철학, 민주, 전화 등 중국에서 사용되는 학술 및 일상용어도 이 시기에 일본에서 수입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화제한어 (和製漢語, 일본에서 만든 한자어)라고 한다.
다시 육수화서로 돌아가 보자.
육수화서의 특징을 살펴보면,
- 굵은 꽃대 : 중심 축이 되는 꽃대가 매우 두껍고 살집이 있다.
- 작은 꽃들: 이 굵은 꽃대 표면에 꽃자루가 없는 작은 꽃들이 촘촘하게 박혀 있다.
- 불염포(Spathe, 佛焰苞) : 육수화서는 불염포라고 불리는 큰 잎 모양의 포에 감싸여 보호를 받는다.
가장 쉬운 예로 옥수수를 들 수 있다. 옥수수 알갱이 하나하나가 사실은 암꽃이 변해서 된 열매들이다. 그 외에도 토란꽃, 카라(calla lily), 스파티필룸 같은 천남성과 식물의 꽃도 대표적인 육수화서이다.
참고로, 불염포(佛焰苞)는 Spathe를 번역한 말로, "부처 불(佛), 불꽃 염(焰), 싸개 포(苞)"를 조합해 '부처님 뒤의 불꽃(광배) 모양으로 생긴, 꽃을 감싸는 잎이라는 뜻이다.
불염포에 대해서는 아직 한글 용어가 없지만, 육수화서에 대해서는 산림청에 다음과 같은 설명을 붙이고 있다.
육수꽃차례. 살이삭꽃차례. 주축이 딱딱하지 않은 살과 같은 육질이고 꽃자루가 없는 작은 꽃들이 많이 밀집한 꽃차례를 말한다. 천남성과나 부들과 식물의 꽃에서 볼 수 있다.
산림청
그러니까, 육수화서가 식물학 전문용어이기는 하지만, 살이삭꽃차례라는 우리말로 바꿔 부를 수도 있다. 예쁜 말이다.

※참고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http://www.nature.go.kr/main/Main.do
산림청 https://www.forest.go.kr/kfsweb/kfs/idx/Index.do
산림청
산림청
www.fores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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