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체르노빌>에서 개들을 사살하러 다니는 군인들을 보고 문득 쿠데그라스(Coup de grâce), 이 말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떠나고 피폭된 체르노빌에 남아 있는 개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관용이라고 해야 할까. 어린 병사는 차마 개들을 사살하지 못하다 겨우 총을 겨누어 쏘았지만, 그 개는 총상을 입고 쓰러진 채 고통스러워한다. 병사는 다시 총을 겨누지 못하고 내려다보는데, 그의 상사가 멀리서 총을 쏘아, 고통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다가와서는 어린 병사에게 '고통을 주지 말라고 했지'라며 눈을 부라리는 장면이 나온다.
누군들 살아 있는 생명에 총질을 하고 싶어 하겠는가. 처참한 사고 앞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무력함이다.
그럼, 쿠데그라스(Coup de grâce)란 무엇일까?
쿠데그라스(Coup de grâce)는 프랑스어로 직역하면, 자비의 일격이라는 뜻인데,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하나는, 전투에서 치명상을 입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병사나 동물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숨통을 끊어주는 마지막 한 방을 의미한다. 말 그대로 '자비'를 베푸는 행위이다.
또 다른 확장된 의미로는, 어떤 상황이나 대상을 완전히 끝장내거나 파멸시키는 결정타, 쐐기 박기, 마지막 일격의 의미로 쓰인다. 이미 거의 끝난 상황에 쐐기를 박는 행동을 가리킬 때 널리 쓰인다.
The company was already in financial trouble, and the pandemic dealt the coup de grâce.
그 회사는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팬데믹이 결정타를 날렸다.
His remarks delivered the coup de grâce to the already fragile trust.
그의 발언은 이미 취약해진 신뢰에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용어의 기원
Coup de grâce는 쿠데그라스 또는 쿠 드 그라스라고 읽는다.
이 '쿠데그라스(Coup de grâce)'라는 말이 문헌에 등장하고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프랑스에서다. 당시에는 결투(Dueling)가 성행했고, 전쟁이 잦았다. 전투나 결투에서 치명상을 입었지만, 즉사하지 않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동료나 적에게, 기사도 정신이나 자비의 차원에서 고통을 빨리 끝내주기 위해 가하는 마지막 일격을 '쿠데그라스'라고 불렀다.
또한 당시 유럽의 끔찍한 사형 방법 중 하나였던 '수레바퀴형'과도 관련이 깊다. 죄수의 사지를 수레바퀴에 묶어 뼈를 부러뜨려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게 만드는 이 형벌에서, 집행인이 마지막으로 심장이나 머리를 강타하여 숨을 끊어주는 것을 '쿠데그라스(자비의 일격)'이라고 불렀다. 이는 끔찍한 고통 속에 있는 사람에게 베푸는 최소한의 자비라는 역설적인 의미를 가진다.
자비의 일격과는 다른 말이기는 하지만, 그 개념의 원형으로 여기는 말로, 크루리푸라기움(Crurifragium)이 있다. 이는 로마 시대 십자가형에서 행해진 말이다.
십자가형은 인류 역사상 가장 고통스러운 사형 방법 중 하나이다. 죄수는 못 박힌 고통뿐만 아니라, 자신의 체중 때문에 횡격막이 압박되어 숨쉬기가 힘들어진다. 숨을 쉬려면 다리에 힘을 주어 몸을 위로 밀어 올려야만 했고,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탈진과 질식으로 서서히 죽어갔다. 죽음까지는 며칠이 걸리기도 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다리뼈 부러뜨리기(Crurifragium)라는 행위가 등장한다. 로마 병사들은 십자가에 매달린 죄수의 죽음을 재촉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둔기로 정강이뼈를 부러뜨렸다.
다리가 부러진 죄수는 더 이상 몸을 위로 밀어 올릴 수 없게 되고 결국 몇 분 안에 횡격막이 완전히 압박되어 빠르게 질식사하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요한복음 19장 31~33절에 기록되어 있다 )
Crurifragium은 라틴어로, 다리를 부러뜨리다는 의미이다.
그럼 이것이 자비였을까?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로마 병사들이 행한 크루리푸라기움은, 업무의 신속한 처리와, 형벌의 연장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보통은 안식일이나, 축제가 시작되기 전에 처형을 끝내야 할 때, 혹은 단순히 교대 시간이 다 되어서 빨리 일을 마치고 싶을 때, 하루가 지나기 전에 일을 마무리해야 할 때 등의 이유로 행했으며, 한편으로 고통을 가중시키는 행위의 연장선으로 보기도 했다.
따라서 로마의 '크루리푸라기움'은 결과적으로는 죄수의 고통을 단축시켰지만, 그 주된 동기가 프랑스의 Coup de grâce(자비의 일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행위의 결과는 비슷하지만, 그 행위를 둘러싼 문화적, 철학적 배경이 다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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