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참고 노트/어원, 기타

"Nobody is hurting me!" : outis, nobody, nemo에 숨겨진 언어적 속임수.

by 동틀 녘 2025. 8. 25.

어떤 단어는 문법의 허점을 파고들어 완벽한 거짓말을 만들어낸다. 'nobody'와 'nemo'가 바로 그런 단어다. 이 단어들은 '특정 인물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인 동시에 '존재의 부재를 나타내는 부정 대명사'라는 중의적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이 문법적 중의성은 고대 신화부터 현대 영화에까지 이어지는 흥미로운 '말장난'으로 사용되었다.

  1. 말장난의 시작 : 오디세우스의 '우티스(Outis-고대 그리스어)

이 언어적 트릭의 원형은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에서 드러난다.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를 속이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우티스', 즉 아무도 아니다(nobody)라고 말했다.

폴리페모스는 눈을 찔린 후, 고통스러워하며 동료 거인들에게 "Outis is hurting me!"라고 외쳤는데, 그것은 우티스라는 놈이 나를 공격하고 있어라고 말한 것이었다. 하지만, 동료 거인들은 그 말을 아무도 공격하고 있지 않다고 해석해 그가 술에 취했거나 신이 내린 벌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도우려 하지 않았다.

 

여기서 오디세우스의 탈출이 가능했던 것은, 이름과 부정어 사이의 중의성을 이용한 완벽한 말장난 덕분이었다.

2. 문학적 계승 : 쥘 베른의 네모 선장(Captain Nemo)

이 고전적인 말장난은 쥘 베른의 소설 '해저 2만 리'에서 네모 선장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진다. 라틴어로 '아무도 아니다'를 뜻하는 nemo는 오디세우스의 '우티스'와 같은 의도로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여기서의 말장난은 속임수를 위한 적극적인 트릭이라기보다는 캐릭터의 정체성 자체를 규정하는 철학적 장치로 사용된다. 네모 선장은 세상에 대해 스스로 '아무도 아닌 자'임을 선언한다. 그는 분명 강력한 힘을 가진 '누군가(Somebody)'이지만, 동시에 세상의 일부이기를 거부하는 '아무도 아닌 자(Nobody)'로 살아간다. 그의 이름 자체가 그의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정체성을 담은 중의적 표현이다.

3. 만화영화적 표현 : 니모를 찾아서 (Finding Nemo)

Nemo는 ne(아니다)+ homo(사람)에서 기원했지만, 고전 라틴어에서 이미 하나의 부정 대명사로 굳어져 '아무도 아니다'라를 뜻하는 독립된 단어다. 라틴어로는 네모로 읽고, 영어로는 니모로 읽는다.

앤드루 스탠튼 감독은 '해저 2만 리'의 팬으로, 이 위대한 이야기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니모를 찾아서'의 주인공 이름을 니모로 지었다고 했다.

니모의 아버지 말린에게 아들 니모는 소중한 단 한 사람(Somebody)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누군가'의 이름이 아이러니하게도 '아무도 아닌 자'인 것.

영화 초반 니모는 아빠의 과보호 속에서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 하는 존재다. 어쩌면 그는 스스로를 아무것도 아닌 존재처럼 느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는 집을 떠나 낯선 수족관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친구들을 돕고 탈출 계획을 주도하며 '누군가'로 성장한다. 즉 '니모를 찾아서'에서 니모는 nobody에서 somebody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부분들도 더러 있기는 하다.

4. 영화적 표현 : 노바디(Nobody)

2021년에 개봉한 노바디(nobody)라는 영화가 있다. 후속작이 곧 개봉한다고 하는데, 기대가 된다. 나는 이 영화를 매우 재미있게 보았다. 영화의 줄거리는 흔한 소재 중의 하나라서 특별히 신선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흥미로웠던 것은 주인공을 지나치게 영웅적으로 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엄청 얻어터진다. 그러면서도 대단한 암살자임을 보여준다.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가족들에게도 무시당하는 평범한 아버지 허치 맨셀(밥 오든 커크)은 사실은 정부의 비밀 조직에 몸담았던 인물이다. 스스로 평범한 일상을 살기로 선택했지만, 그의 숨겨진 본능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그럼 왜 이 영화는 nobody라는 제목을 사용했을까?

이에 대해 몇 가지 해석을 해보았다.

  •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평범한 남자(the mundane man)

영화 초반 주인공 허치 맨셀은 말 그대로 '아무도 아닌(nobody)' 존재처럼 보인다.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회계사인 그는 특별한 점도 눈에 띄는 개성도 없다.

바로 이런 점에서 그는 그 어디에서도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배경처럼 존재하는 투명인간 같은 인물이다. 즉 nobody, 아무것도 아닌 자이다.

  • 스스로 원했던 정체성.

허치는 한편으로, 폭력적인 과거를 청산하고, 일상적인 평범함을 누리며 사는 것을 선택했다. 그는 피비린내 나는 과거의 삶을 청산하고 의도적으로 아무도 아닌 자가 되기로 한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본능과 과거를 억누르기 위한 처절한 노력의 결과물인 셈이다. 여기서 nobody는 그가 지키고 싶어 한 '평범함' 그 자체다.

  • 가장 위험한 nobody.

악당들은 허치를 그저 '하찮은 놈'으로 취급하고 얕보다가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여기서 nobody는 '당신들이 감히 누구를 건드렸는지 모를 것이다'라는 경고의 의미를 갖는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그 정체를 아무도 모르는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2010년 영화 아저씨를 떠올리게 한다.

  • 이름 없는 해결사 nobody

허치가 자신의 과거를 설명할 때, " I was a nobody"라고 말한다. 이는 그가 특정 기관에 소속된 요원으로서 아니라 그저 가장 더러운 일을 처리하는 '이름 없는 해결사'였다는 뜻이다. 이처럼 nobody는 그의 숨겨진 정체성이자, 그가 가진 파괴적인 능력의 또 다른 이름인 셈이다.

'nobody'라는 영화는 영어 nobody의 함축된 의미를 잘 보여주고 있다.

결국 Outis, Nemo, Nobody는 단순한 ‘부정 대명사’를 넘어,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자’라는 역설적 정체성을 담아내는

언어적 장치다. 고대 신화에서 현대 영화에 이르기까지, 이 말장난은 인간이 자기 정체성과 존재의 의미를 어떻게 규정하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문화적 코드라 할 수 있다.

바이킹의 해골, 출간 예정